본문 바로가기

손으로 쓰다/독후감, 필사

누가 글로 밥 벌어 먹고 사는가-김훈<연필로 쓰기>리뷰와 필사

『연필로 쓰기』를 읽고

 

"연필은 내 밥벌이의 도구다." -<시작>에서

 

연필로 쓰고 지우개로 고쳐가며 한 권의 책이 나왔다.

책에는 작가가 어렸을 적 자랐던 동네, 지금 살고 있는 동네가 소개된다. 먹은 음식, 본 영화, 밤 하날의 별과 사계절이 등장한다. 이것들이 특별한 경험인가?

 

나도 가끔이긴 하지만 영화를 보고, 여름엔 냉면을 먹고, 자주 떡볶이를 먹는다.

나는 그냥 보고, 그냥 먹고, 그냥 그냥 또 그냥.

 

나도 작가와 똑같이 떡볶이를 먹는다.

하지만 떡볶이와 그 맛에 대해선 생각해 본 일이 없다. 그저 맛있네, 좀 짜네 정도를 느낄 뿐.

내 어린 시절의 떡볶이는 어땠는지, 학창 시절 떡볶이를 같이 먹었던 친구들은 어떻게 사는지를 생각하지 않고,

빨간 가래떡을 입에 넣는 일에만 집중한다. 떡볶이의 문화가 어떻게 진화되고 있는지, 맛이라는 걸 느끼는

사람의 감정은 무엇인지 생각하는 건 떡볶이를 먹는 동안은 물론이고 꿈에서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작가는 떡볶이를 먹으면서 어머니의 떡볶이와 30년 만에 먹은 떡볶이와 노량진의 떡볶이를 생각한다.

나이 들어서 먹는 떡구이에서 어머니의 떡볶이를 추억한다.

어머니의 떡볶이는 간장 떡볶이였다. 30년 만에 먹은 떡볶이는 간장이 아닌 고추장이 베이스였다.

노량진의 떡볶이는 일회용 컵에 담겨 있었다.

 

짜장면이 더 이상 특별한 날에만 먹는 음식이 아닌 것처럼, 떡볶이가 대중 속으로 들어온 역사는 짜장면보다 더 길다.

대한민국 사람 누구나 떡볶이를 먹는다. 나도 먹는다.

하지만 자신만의 떡볶이로 글을 쓰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평범한 것들에서 특별함을 찾아내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 특별함이 저 먼 별나라의 특별함도 아닌데, 그것을 끄집어내어 독자에게 한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일.

그 일이 나에겐 밤하늘의 별을 따다 준 것 같이 특별하다.

 

"나는 삶을 구성하는 여러 파편들, 스처지나가는 것들, 하찮고 사소한 것들, 날마다 부딪치는 것들에 대하여

말하려 한다. 생활의 질감과 사물의 구체성을 확보하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았다." -<알림>에서

 

별을 따다 주는 일은 쉽지 않다.

그 쉽지 않은 일을 해서 밥 벌어먹는 사람들은 오늘도 연필을 쥐고 있다.

 

-필사

A4 이면지 18장

총 18편의 짧은 산문 중에서 7편 필사.

1. 내 마음의 이순신 Ⅰ& Ⅱ 3. Love is touch, Love is real 4. 떡볶이를 먹으며 5. 오이지를 먹으며,

6. 할매 말 손자 말 영화 <말모이>를 보고 7. 별아 내 가슴에.

 

김훈 작가님의 문체에서는 담백하면서 힘찬 느낌을 가장 많이 받는다. 하지만 곳곳에 놓인 섬세하고 아름다운 표현들에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필사하면서 단어 노트에 따로 적은 문장들을 옮겨본다.

 

"억새는 바람의 풀이다. 억새가 가진 것은 저 자신 하나와 바람뿐이다. 그래서 억새꽃은 꽃이 아니라 꽃의 혼백처럼 보인다.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면 이 혼백 안에 가을빛이 모여서 반짝거린다. 작은 꽃씨 하나하나가 가을 빛을 품고 있다." -p,17

 

"나는 글자보다는 사람과 사물을 들여다보고, 가까운 것들은 가까이하려 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야, 보던 것이 겨우 보인다." -p,76

 

"냉잇국에서는 겨울을 벗어나는 해토(解土)무렵의 흙냄새가 났고 그 흙에 스미는 봄볕냄새가 났다. 한 사발의 국물에 흙과 햇볕의 힘이 녹아 있어서 이 국물을 마시면 창자 속에 봄이 온다...... 세상의 거대한 악 앞에서 이 가난한 국물 한 그릇은 얼마나 무력할 것인가 마는 이미 없는 사람들과는 그조차 나누어 먹을 수가 없으니, 사랑이네 희망이네 하는 것들도 한 사발 국물의 온기에서 시작됨을 알 것이다." -p,91

 

"그립다는 말은 그리움을 끝내고 싶다는 말이다." -p,147

 

"오이지는 오이와 소금이고, 무말랭이는 무와 햇볕이다. 무말랭이를 씹으면 섬유질의 골수에 배어 있는 가을햇볕의 맛이 우러난다." -p,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