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콥스키의 생애 (Piotr Ilyitch Tchaikovsky 1840~1893)
1840년 러시아의 캄스코봇킨스크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음악 교육을 받았다. 차이콥스키의 아버지는 광산 감독관으로서 러시아 우랄 지방 여러 곳의 광산을 다녀야 했다. 아버지는 차이콥스키를 불안정한 음악가보다는 법률가로 키우고자 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1850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법률 학교에 입학하고, 학교 내에 있는 합창단 활동을 하며 음악의 길만은 이어 나갔다.
1859년 법률 학교를 졸업하고 법무성에서 근무하였다. 그러나 그의 음악에 대한 열망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1860년 음악 교실에 입학하고, 1862년에는 승격된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의 1기 학생이 되었다. 이후 차롐바에게 음악 이론 수업을 받으며 음악원의 원장이었던 안톤 루빈스타인에게 작곡을 사사했다.
1866년에는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이 만든 모스크바 음악원의 선생으로 임용된다. 이후 1878년 음악원의 교수 활동을 그만둘 때까지 여러 명작을 작곡하였다.
차이콥스키의 대표작으로 뽑히는 <피아노 협주곡 제1번 b플랫단조>(1874)를 작곡했다.
교향곡 제3번(1875), 백조의 호수(1875~76), 교향적 환상곡 <프란체스카 라 리미니>(1876),
첼로와 관현악을 위한 <로코코 풍의 주제에 의한 변주곡>(1876), 교향곡 제4번(1877~78),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1877~78), 바이올린 협주곡(1878) 등의 곡들이 이 시기에 만들어진 작품들이다.
1876년 경부터는 러시아 철도왕의 미망인인 나데즈다 폰 메크 부인의 후원을 받으면서 교수직을 그만둔 이후로는 음악에만 전념하게 된다. 그녀의 후원은 1890년 즈음에서 끊어지게 되는데, 일설에 의하면 폰 메크 부인의 가족들이 거세게 후원을 만류하였고, 차이콥스키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후원을 그만둔 가장 큰 이유라고 한다.
1877년 차이콥스키는 여제자였던 안토니나 미류코바와 이혼을 하게 된다. 그녀의 열렬한 구애 끝에 둘은 결혼을 하긴 했지만 결혼생활은 곧바로 파경을 맞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극도의 신경쇠약에 걸린 차이콥스키는 휴양차 여행을 떠난다. 이후 무렵부터 <바이올린 협주곡>,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 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 7곡의 교향곡 중 제4번, 제5번 등의 곡을 작곡하였다.
1893년 <교향곡 제6번 비창>을 작곡하고 같은 해 11월 6일 영면에 들었다.
차이콥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해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연례행사처럼 극장에 올려지는 공연이 있는데, 바로 발레 <호두까기 인형>이다. 왜 하필 <호두까기 인형>일까? 이 극의 배경이 바로 크리스마스이다. 또 동화 같은 환상적인 이야기가 가족들이 다 같이 보기에 특화된 것도 이유이다. 더불어 차이콥스키의 아름다운 멜로디와 무용수들의 춤이 어우러져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크리스마스 대표 공연이 되었다.
<호두까기 인형>의 시작
1890년 차이콥스키가 50세가 되던 해에 그는 신작 발레의 의뢰를 받는다. 처음에 그는 이 작품을 쓰는 데에 별로 내켜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미 여러 곡의 작업을 하고 있던 중이었고, 심신의 상태도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곡 작업은 별 탈없이 진행되었다.
독일의 작가이며 작곡가였던 호프만의 동화 <호두까지 인형과 생쥐 왕>이 원작이다. 호프만은 친구의 자녀들을 위해 이 이야기를 썼다고 한다. 프리츠와 마리라는 남매의 이름 역시 그 아이들의 실제 이름이라고 한다.
이 원작을 각색한 것을 바탕으로 하고, 마린스키 극장의 수석 안무가 마리우스 프티파가 발레로 구성하고 차석 안무가 이바노프가 수정을 한 것이 거의 그대로 내려오고 있다.
<호두까기 인형의>의 줄거리
크리스마스, 마리라는 이름의 소녀는 호두까기 인형을 선물 받는다. 하지만 오빠 프리츠가 그만 인형을 망가뜨리고 만다. 마리는 인형을 정성껏 보살펴준다. 모두가 잠자리에 든 시간, 시계 종소리가 울리고 갑자기 생쥐들이 나타나 마리를 괴롭힌다. 호두까기 인형은 마리를 도와주기 위해 생쥐들과 한 바탕 전투를 벌인다. 이 일을 인형을 선물해 준 드로셀마이어 아저씨에게 이야기해주자, 아저씨는 인형에 얽힌 전설을 들려준다.
옛날 어느 왕이 생일 잔치를 열었다. 그런데 이 잔치에 나타난 생쥐들이 음식을 모두 먹어치워 버리고, 화가 난 왕은 생쥐들을 모두 없애버린다. 화가 난 생쥐 여왕은 공주의 얼굴을 물어버리고, 크라카툭 호두를 먹어야 예전 얼굴을 찾을 수 있다는 저주를 건다.
한 청년이 나타나 그 호두를 깨물어 공주에게 건넸다. 공주는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왔고, 그 저주는 생쥐 여왕에게 옮아갔다. 이에 생쥐 왕은 그 청년을 못생긴 호두까기 인형으로 만들어버리고 저주를 건다. 진실한 사랑을 받아야 풀리는 저주였다.
마리는 인형에게 칼을 주고, 그 칼로 호두까기 인형은 머리가 일곱인 생쥐왕을 물리친다. 호두까기 인형은 마리를 인형의 나라로 데리고 간다. 둘은 그곳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인형의 나라는 소녀의 방이었다. 이때 드로셀마이어 아저씨가 조카를 데려오고, 조카는 마리에게 그녀의 사랑으로 저주를 풀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가 바로 호두까기 인형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인형 나라의 왕자였었다. 마리는 그 왕자의 청혼을 받고 둘은 행복하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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