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쓰다/독후감, 필사

울라브 H. 하우게 - 시 필사와 감상

기괴한샌님 2020. 1. 6. 17:44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다 >

 

내리는 것을

어찌해야 하나,

춤추며 팔랑거리는 솜털에 대고

둔중한 창을 겨누어야 하나,

어깨를 구부린 채

오는 대로 받아야 하나?

 

어스름이 내릴 무렵

막대를 들고

마당 여기저기

뛰어다닌다,

도와주려고.

별 힘도

안 드는 일이다.

막대로

툭 두드리거나

가지 끝에서

휙 흔들면 그뿐─

 

사과나무가

제자리로

튕겨 돌아오는 동안

털린 눈을 고스란히 맞기는 해도.

 

너무 자신만만한 것이다, 어린 나무들은,

바람 말고는 어디에도

숙이는 법을

아직 배운 적이 없다─

이 모든 일이

다만 재미요

짜릿한 놀이일 뿐.

수확을 맺어본 나무들은

눈을 한 아름 얹고도

아무렇지 않다.

 

시의 풍경 :

어린 나무들이 눈의 무게에 짓눌릴까 걱정스러운 마음이 든다. 눈이 나무에 쌓이지 못하도록 눈을 막대기로 휘저어 날리고, 나뭇가지를 건드려 눈이 떨이지게 한다. 떨어지는 눈을 맞지만, 별로 힘들지 않다.

이미 큰 나무들은 눈이 내리는 일에 심드렁한다.

 

나의 감상 :

눈을 터는 사람은 아마 아이일 것이다. 눈이 와도 별 감흥이 없는 어른들은 마치 이 시의 '수확을 맺어본 나무'같으니까. 나를 포함한 어른들은 눈이 와서 길이 미끄러운 일, 차에 눈이 쌓이는 일, 거리가 더러워지는 일에만 신경을 쏟는다.

눈을 맞는 어린 나무들은 관심 밖이다.

솜털 같은 눈을 맞으며 이리저리 방방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아이들은 신발과 장갑이 젖는 줄도 모르고 오직 자기 안의 기쁨에 충실하다.

책 한 권을 좀 빨리 필사하기 위해 찾은 시집인데, 시는 너무 어렵다. 단박에 이해가 안 된다. 읽고 또 읽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고 다시 읽으며 필사를 시작한다. 이 감상문을 쓰느라 오늘은 시 한 편의 필사로 마무리한다.

 

<만남>

 

그들은 만났다─ 인사를

해야 할지 망설이며.

다음 순간 그녀가 말을 건넸고

한두 걸음 그의 곁을 따라 걸었다.

어둠이 내리고 나면

모든 사람을 알아볼 순 없는 법.

그녀는 아직 젊었고

눈동자 속의 빛도

여전히 까맸다.

 

말들은 떨어져 내렸다,

열린 바다를 가운데 두고

각자의 뱃전에서 던지는

낚시 추처럼.

 

나중에서야 그는

그것들이 엉켜버린 걸 알아차렸다.

바다 깊이

변덕스런 해초 숲과

난데없이 갈라진 틈 위로

해류들이 다투는 지점 어디께.

 

그녀는 어찌나 조심스러웠던지!

재빨리 끊어버렸다.

 

하지만 그에겐 끊어진 줄 끝과

그녀의 낚싯바늘이 있었다,

구명밧줄이

던져진 줄은

알지 못했어도.

 

나의 감상 :

남자와 여자가 만났다. 처음에는 조심스러운 사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많은 말들을 나누었다. 하지만 그 말들이 서로에게 가 닿지 않았고, 엉켜버리기만 했다. 여자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자의 말은 남자를 여전히 날카롭게 찌르고 있다. 여자의 도와달라는 신호를 눈치 채지 못하고.

말은 다시 주워 담기 힘들다. 그것이 끊어져 버린 낚싯바늘이라면 더욱더.

 

<이파리움막과 눈집>

 

대단할 것도 없다

이 시들은, 그저

되는대로

단어 몇 개를 쌓았을 뿐.

그럼에도

나는 생각한다,

이것들을 짓는 게

좋았다고, 그런 다음이면

잠깐 동안

집을 가진 것 같다고.

어릴 적

지었던

이파리움막을 기억한다,

들어앉아

빗소리를 듣고 홀로 황야에 있는 기분으로

콧등에

머리에 떨어지는 물방울을 느끼던 움막─

아니면 크리스마스 때의 눈집을,

쪼그려 들어가

자루로 구멍을 막아놓던 눈집.

 

나의 감상 :

시 한 편을 쓰는 일은 자신만의 작은 세계를 짓는 일과 같다.

몇 개 밖에 안 되는 제한된 단어들로 복잡한 세상을 설명해야 하는 어려운 일을 끝내면, 그 안에는 하나의 세계가 구축된다. 그 세계는 어렸을 때 지었던 이파리움막이나 눈집과 비슷하다. 나만의 아지트다. 나만의 세상이다.

 

 

<한국>

 

나란히 누워 있다. 적이든 아군이든,

갈빗대 사이엔 풀이 돋고, 눈구멍으로는

빛나는 양귀비, 얼굴 찌푸린 녹슨 무기들.

 

이제 그들은 평화를 얻었다. 어디에 경계선이 그어질지

더 이상 줄다리기하지 않는다, 옳은 쪽이 이기든 그른 쪽이 이기든.

각자의 경계를 두고 싸우던 시절의 이빨을 넘나들며

죽음의 비밀이 배회한다.

 

한국의 흙에서 나온 인골(인골)들이여, 협상 테이블 너머

그림자처럼 숨죽인 그대들을 본다,

계획된 행위 끝에 그대 형제인 죽음이 퇴적물로 쌓이는 그곳.

 

죽음은 말이 없고, 그저 정치가의 싸늘한 의식에 담긴

희미한 찌푸림일 뿐. 그대의 평결은

날인 찍히고 서명되어─ 서류철로 던져진다.

 

나의 감상 :

2020년은 한국 전쟁이 발발한 지 70년이 되는 해라고 한다.

이 조그만 땅 덩어리에 어떻게 그렇게나 많은 아픔, 고통과 희열이 넘치는지......

먼 나라의 시인이 바라본 한국의 분단 상황.

 

-필사

시집에 실린 71편의 시를 모두 필사.

A4 이면지를 아낀다고 가로로 누워 쓴 시. 꼴이 우습다.

 

-내게 진실의 전부를 주지 마세요

 

내게 진실의 전부를 주지 마세요,

나의 갈증에 바다를 주지 마세요,

빛을 청할 때 하늘을 주지 마세요,

다만 빛 한 조각, 이슬 한 모금, 티끌 하나를,

목욕 마친 새에 매달린 물방울같이,

바람에 묻어가는 소금 한 알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