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향한 미친 웃음 - 영화 <조커> 리뷰
코미디언이 되는 오랜 꿈을 품은 남자가 있다. 남들을 웃게 해 주기 위해서.
그러나 정작 본인은 단 1초도 행복한 적이 없었다. 숨을 헐떡일 만큼 괴롭게 웃을 수밖에 없는 남자, 아서 플렉.
아무도 그의 아픈 웃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광대일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던 그는 복지 예산 삭감으로 정신과 상담과
약을 지원받을 수 없게 된다.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고립되고 무시받던 남자는 개 같은 코미디와 가치 없는 죽음을 택하는 대신 미친 조크를 하는 사람이 되기로 한다. 무례한 세상에서 더 이상 아닌 척하지 않고, 참았던 분노를 드러내면서 아서 플렉은 조커가 된다.
광대 분장 살인 사건이 난 후 고담시의 시민들은 잘난 금융쟁이들을 죽인 광대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그들은 아마 평소에 느꼈던 빈부격차의 차별로 인해 조커에게 감정이입을 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담시 시민들은 저마다 광대 가면을 쓰고 "우리가 광대다"라고 외치며 사회의 부조리를 문제로 시위를 벌인다. 그리고 조커를 일으켜 세워 춤추게 한다. 고담시는 희대의 악인 조커와 어둠의 영웅 배트맨의 도시가 되어간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선을 상징하는 주인공은 악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어린 시절이 불우했다고 모두 당신처럼 되지 않는다." 하지만 개인의 문제로 돌리기 전에 생각해 볼 것이 있다. 국가가 국가의 일을 제대로 했는지 말이다.
영화 <조커>의 배경은 1981년의 고담시이다. 하지만 80년대 초 가상의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우리는 2019년의 파리, 서울, 홍콩 여러 도시에서도 목격할 수 있다. 갈수록 심해지는 빈부격차, 아동학대, 혐오, 타인에게 가해지는 무자비한 언어와 힘의 폭력, 집 앞까지 쫓아오는 어둠의 그림자.
1999년 신창원이라는 희대의 탈옥수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경찰들을 농락하면서 2년 6개월이라는 긴 도피 생활 끝에 드디어 붙잡혔는데, 일부 사람들은 그가 잡히지 않기를 바랐고, 그를 마치 유명인사나 연예인이라도 된 것처럼 여겼었다. 그가 검거됐을 때 입었던 현란한 티셔츠가 유행했었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 신창원은 어렸을 때 어머니를 여의었고, 중퇴를 하고 이후로는 소년원과 교도소를 들락거렸다고 한다.
1988년에는 지강헌 사건이라고 불리는 인질 사건이 있었다. 탈주범 4명이 서울의 한 가정집에 들어가 가족을 인질로 삼고 경찰과 대치하다 자살하거나 사살된 사건이었다. 이때 지강헌이 외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회자되고 있다. 탈주범들은 범죄자들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들의 비극적 결말과 외침에 시민들은 어느 정도 연민과 동병상련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소시민 중에서도 소시민이었던 아서 플렉이 조커가 되어가는, 갈 수밖에 없었던 그의 고통을 보여주는 영화 <조커>.
물론 범죄자에게 동조할 수는 없다. 그들의 어린 시절이 불우했다고, 제대로 살기 위한 기회가 없었다고 그저 동정할 수도 없다.
전문가인 프로파일러와 범죄심리학자들은 범죄자들의 성장 과정과 범죄 유형, 심리 등 여러 가지를 조사하고 통계를 내서 자료로 만든다. 범죄 용의자의 검거를 돕기 위해서 이기도 하고 범죄 피해 예방을 위해서도 필요한 과정이다. 전문가들은 그들이 소년원에 들어올 때 교정, 교화를 적극적으로 돕도록 해아 한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1세대 프로파일러 중에 한 분이신 배상훈 교수님의 인터뷰에 따르면 사이코패스 기질을 가진 사람들 중에 실제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대부분은 교육 등을 통해서 사회성과 절제력이 길러져 평범한 사람들처럼 산다고 한다. 하지만 더 이상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통제력이 없는 사이코패스만 위험이 되는 것 같지 않다. 노래방에서 잘 놀다 잠깐 화장실을 갔다가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폭행을 당하고, 아르바이트하다가 희생자가 되고...... 확률은 나와 상관없을 때만 확률일 뿐이고, 나에게 그 일이 일어나면 100%이다.
분노가 넘쳐나는 사회다. 우리 사회의 안전망은 어디까지 얼마나 안전하게 뻗어있는가? 어떻게 이렇게 무례하고, 배려가 없는지 절규하던 조커의 목소리가 영화를 본 뒤에도 오래도록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