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예술

예술을 위하여, 빈센트 반 고흐

기괴한샌님 2020. 3. 17. 21:30

빈센트 반 고흐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생애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 남부의 쥔더르트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빈센트는 할아버지의 이름을 딴 것인데 이는 당시의 관습 같은 일이었다. 어린 시절의 반 고흐는 평범하면서 조용한 성격을 소유한 책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신학과 문학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는데 이는 고흐의 인생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11살이 된 고흐는 그가 태어난 곳에서 25km 떨어진 개신교 교사가 운영하던 기숙학교를 다니게 된다.

1866년 13살에는 쥔더르트에서 더 멀리 떨어진 국립중학교로 진학했다. 이 학교에서 고흐는 호이스만스 선생님한테서 미술 수업을 받았다. 하지만 15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만다.

1869년 숙부가 운영하는 구필 화랑에서 일을 시작한다. 1873년 3월 고흐는 헤이그의 구필 화랑을 떠나 런던지점으로 향하게 된다. 동생 테오의 아내의 말에 따르면 고흐에게 이 시기는 가장 행복한 때였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일적인 면에서 인정을 받고 있었고 동시에 돈도 꽤 벌었다. 1875년부터는 파리지점에서 일하였다. 하지만 그는 점점 아트 딜러란 일에 회의감을 느꼈다. 예술이 상품으로 취급되는 것에 대한 분노와 자괴감이 들었고 그는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화랑 일을 그만둔 후로는 종교에 빠져들었다. 성직자의 길로 가고자 했던 고흐는 파리를 떠나 영국의 램스케이트로 간다. 그는 전도사로 활동을 하길 원했지만 여건은 녹록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종교인의 삶에 대한 열망은 화가가 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1879년에는 벨기에의 석탄 마을로 선교활동을 간다. 그러나 선교단체, 아버지와의 갈등을 한 차례 겪은 후 다시 보리나주 석탄 마을로 돌아온 고흐는 광부들의 열악한 생활과 환경에 관심을 갖고 그들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그리고 싶다는 열의에 빠지기 시작한다.

1880년 그림을 더 배우고 싶다는 마음에 보리나주를 떠나 브뤼셀로 간다. 브뤼셀로 와서 그림 지도를 받는 중에 고흐는 시엔이라는 여인과 함께 살게 된다. 그녀는 딸이 하나 있는 매춘부였다. 목사였던 아버지와 동생 테오는 그녀와의 동거를 반대했다. 심지어 고흐의 아버지는 아들을 정신병원에 보내려고까지 했다. 1883년 고흐와 시엔은 헤어졌다. 형편이 좋지 않은 경제 상황으로 시엔은 다시 매춘부 생활로 돌아가야 했다. 그녀를 끝까지 책임지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환멸을 느낀 채 결국 헤어지게 된 것이다.

동생 테오가 구필 화랑을 그만두고 미국으로 건너가려 하자 고흐는 어쩔 수 없이 뇌넨으로 이사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뇌넨에서 머무르는 동안 고흐는 많은 드로잉과 수채화를 남겼다. 이 시기 그의 작품들은 꽤 어두운 분위기였다.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작품 판매에 대해 실망이 섞인 발언을 하면 테오는 형의 작품은 너무 어둡고 유행과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1885년 11월 고흐는 안트워프로 옮긴다. 여기에서 그는 색채학에 대해 공부하며 색의 범위를 넓혀갔다. 또 일본의 우끼요에에 영향을 받아 그 양식을 적용하기도 했다.

1886년 파리로 거처를 옮겨 파리와 몽마르트를 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렸다. 이곳에서 폴 고갱을 만나 친분을 맺었다. 파리 생활 동안 고흐는 약 200여 점의 작품을 그렸다. 그리고 남프랑스의 아를로 떠난다.

아를에 있는 동안 작품의 색은 더욱 다채로워진다. 아를의 이국적이면서 활기차고 풍부한 색은 그의 작품에 그대로 녹아있다. 1888년 5월에는 라마르틴의 노란 집에 방을 구했다. 고흐의 몇 번의 요청 끝에 드디어 고갱이 아를로 왔다. 둘은 한 달 동안 함께 그림 작업을 했다. 하지만 둘의 사이는 벌어지기 시작했다. 고갱과 갈등을 겪는 동안 고흐가 귀를 자르는 사건이 일어난다. 고갱은 아를을 떠나버리고 다시는 고흐를 만나지 않았다. 고흐는 집과 병원을 드나들다 생 레미 지방의 정신병원으로 들어간다.

1890년 고흐는 병원을 떠나 파리 근교인 오베르에 머문다. 이곳에 있는 동안 그는 <오베르의 교회>와 같은 유화 70여 점을 그렸다.

마지막 인생 몇 년 동안 고흐의 우울증은 더 심해졌고, 그는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결국 총으로 자살을 시도했고, 그를 찾아온 테오의 곁에서 1890년 7월 29일 서른일곱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고흐의 작품

<해바라기>

빈센트 반 고흐 하면 여러 명작들이 떠오르는데, 강렬한 모습의 해바라기는 그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고흐는 동료 화가이자 친구인 폴 고갱을 기다리며 노란 집에 걸어 둘 해바라기 연작을 그렸다.

<해바라기>는 고흐의 노란색에 대한 탐구이다. 노란색은 태양의 색이며 행복의 색이고 당시 고흐의 기대감을 나타내 주는 색이다. 해바라기들은 각기 저마다 다른 생장의 모습을 보여준다. 싱싱한 꽃잎은 열정적인 터치로 두껍게 채색되었고, 다 자란 해바라기는 어두운 오렌지 빛깔로 표현되었다.

 

<별이 빛나는 밤>

이 작품은 고흐의 마지막 1년에 극심해진 정신병에 시달리며 그린 작품이다. 고흐는 1889년 5월 생 레미의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는데, 이 시기의 대표 작품이 바로 <별이 빛나는 밤>이다.

고흐의 눈에 비친 생 레미의 밤하늘은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하늘의 운동과 별들의 움직임을 온몸으로 느끼며 그것들을 표현하려 안간힘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