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흐마니노프의 삶과 피아노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Sergei Vasil'evich Rakhmaninov)
라흐마니노프의 생애
1873년 러시아의 부유한 지주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여느 유명한 음악가들처럼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접하고,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4살 무렵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10대 시절에는 작곡을 하기도 했다.
1882년 아홉 살 때는 페테르스부르크 음악원에 입학하고, 1888년에는 모스크바 음악원에 들어가 피아노와 작곡 공부를 하였다.
1892년 <전주곡 c#단조>를 작곡하였는데 이 곡은 후에 런던에서 극찬을 받았다. 1899년 런던 필하모니 협회에 초대되어 작곡가, 피아니스트로서 인정을 받고 피아노 협주곡 의뢰를 받는다.
1897년 24살에 <교향곡 1번 d단조 Op.13>을 발표한다. 하지만 그의 기대와는 다르게 반응은 좋지 않았다. 러시아 5인조의 한 멤버였던 세자르 큐이는 "애굽의 재앙에 관한 교향곡 같다."라는 말로 혹평을 쏟기도 했다. 이에 심리적 타격을 받은 라흐마니노프는 근 3년 동안 어떤 곡도 쓰지 못하게 된다. 또 이 시기 동료 피아니스트이자 자신의 사촌인 나탈리아와 결혼하려고 했지만 러시아 정교회와 그녀 부모의 반대를 받아 우울증은 심해져만 갔다.
1990년경부터 정신과 의사 니콜라이에게 치료를 받기 시작하며 점점 회복되어, 다시 작곡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니콜라이 박사는 라흐마니노프에게 '자기 암시 요법'을 써서 그를 치료했다. 니콜라이 박사는 그에게 "당신은 새 협주곡을 씁니다. 그리고 큰 성공을 거둡니다."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일러주었다고 한다.
이 시기에 쓰여진 작품이 라흐마니노프의 명작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이다. 이 곡은 호평을 얻고 글린카 상을 수상하며, 그는 음악가로서 재기에 성공한다. 또 그는 이 곡을 그를 치료해주었던 니콜라이 박사에게 헌정하였다.
1909년에는 미국에서 활동하며 <피아노 협주곡 제3번>을 발표한다. 이 곡은 극강의 난도로 피아니스트를 배우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프로 연주가들까지 경악케 만든 곡이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고 라흐마니노프도 재산을 몰수당하게 된다. 다음 해에 그는 미국으로 망명을 한다. 망명 후 <피아노 협주곡 제4번>, <파가니니의 주제에 의한 변주곡>, <교향곡 제3번>등의 작품을 남겼다.
그의 만년에 스탈린이 귀국할 것을 권하기도 했지만 결국 실현되지는 못했고 1943년 미국 캘리포니아 베벌리힐스에서 타계했다.
피아노 협주곡 제2번
라흐마니노프는 교향곡, 협주곡, 실내악,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썼다. 하지만 그의 음악적 진가가 발휘된 장르는 역시 피아노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라흐마니노프 자신이 피아니스트였기에 피아노가 가진 여러 매력과 가능성을 직접 작곡 활동을 통해 실현시킬 수 있었다. 그 곡들 중에 <피아노 협주곡 제2번 c단조>는 단연 최고의 작품으로 뽑힌다. 라흐마니노프가 우울증을 극복하고, 그에게 음악가로서 재기 발판을 마련해 준 작품이라는데 또한 의미가 있다.
곡의 첫 악장은 무거운 분위기의 피아노 독주로 시작된다. 곡이 진행되면서 절망, 좌절, 환희, 기쁨, 희망이 가득 차 비련미와 부드러움이 교차한다. 마지막 악장에서는 힘차고 정열적인 분위기로 마무리된다.
일본 애니메이션이자 드라마로도 방영된 노다메 칸타빌레(음대생들의 성장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에 나와 한때 다시 한번 대중들의 주목과 인기를 받기도 했다.
피아노 협주곡 제3번
라흐마니노프가 쓴 4개의 협주곡 중에서 가장 어려운 곡으로 알려져 있다. 피아노의 현란한 기교를 보여주는 곡이다.
1909년 11월 28일 월터 담로수의 지휘, 뉴욕 필하모닉, 라흐마니노프 자신의 피아노 연주로 처음 공연되었다. 1920년대에는 당시 청년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가 연주하여 크게 성공했다. 라흐마니노프는 호로비치의 연주를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라흐마니노프가 사망한 지 40여 년이 지난 1982년 런던에서 연주회를 가진 호로비츠는 라흐마니노프에 대해 "그는 내가 아는 가장 위대한 인간이며 위대한 작곡가며 위대한 피아니스트였다."라는 말로 그를 회고했다.
이 곡은 영화 <샤인>(감독 스콕 힛스, 1996)에 삽입되어 그 곡의 화려함과 동시에 난해함을 보여주었다. 영화에서 천재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갓이 이 곡을 연주하고 실신하는 장면이 나온다.